2008-11-05

[다큐멘터리] 벽 안의 아이들


  처음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만을 보았을 때, '벽안(碧眼)의 아이들'인 줄 알았습니다 -_-;;; 나중에 설명을 읽어보니 '벽 안'의 아이들(Alone in Four Walls)이더라고요. 2008년 EDIF(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출품작으로, 러시아의 소년원 안에 수감되어 있는 소년들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처음 정보를 접했을 땐, 솔직히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수감자의 이야기를 수감자와 가까운 시점에서 서술하는 데다, 그 수감자들이 어린 소년들이라는 배경은 어떻게 보아도 동정과 연민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소재잖아요. 그래서 분명 감독의 의도가 이 쪽에 치우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이 작품은 소년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쪽에 많은 비중이 쏠리지 않았습니다. 우선 편집된 화면에 감독의 해설이 없었어요. 흔히 나레이션이나 자막의 형식으로 편집자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은데, 이 작품은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여 엮어둔 것이 감독의 의도를 전달하는 방법이었지요. 이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둔 화면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가득 써 두는 다큐멘터리는 웬지 편집자의 생각을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한 의미전달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당히 싫어하거든요 ㅋ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을 취했다고 해서 감독이 스스로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편집되어 있는 영상 자체에 이미 감독의 의도는 다분히 녹아있기 때문이지요. '수감되어 있는 소년들의 안타까운 모습과 현실' 부분과 '그 소년들이 저지른 엄청난 죄'를 균형있게 배분하였고, 그것을 '타락한 아이들'의 죄와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 의한 죄'로 다시 재해석하고 있는 점에서 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 줄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기서 등장하는 '한 명의 소년'은 그 선입견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쪽의 입장에 치우치게 되면 다른 한 쪽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아마 감독은 그러한 선입견에 갖혀 이 아이들의 전체 모습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다큐를 편집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같은 감독의 영상 배치 덕분에, 이 아이들에 대한 가치평가를 작중에서는 쉽게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갈등을 일으키는 양자의 가치를 안고 작품을 보게 되었죠. 이 점은 정말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마무리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드네요. 계속 직접적인 말이 없던 감독은, 끝에 '소년원생 중 91퍼센트는 다시 성인 교도소에 수감된다'는 한 줄의 자막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감독은 보류되었던 가치평가를 가지고 있는 시청자인 저에게 자신의 의견을 살짝 피력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구조의 피해자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소년들의 입장을요. 하지만 아쉽게도 감독은 그 동안 중립적으로 편집되어왔던 영상 덕분에 자신의 논조를 강하게 뒷받침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적정한 수준의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약간이라도 소년들에 대한 인간적 연민을 가질 수는 있겠죠. 물론 '연민'과 '범죄자'의 극단을 타협시킬 접점으로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든 것은 분명 원리적인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약간 뜬금없이 나왔다고 해야할까요 -_-a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다큐에 나오는 것과 같은 소년범들, 나아가서는 범죄자 모두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이 다큐멘터리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에고 이번 문장은 쓰고나니 왠지 번역어투같군요 -_-;;;) 현재 생겨나고 있는 범죄자들이 사회 구조적인 이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인간 상호가 해 줄 수 있는 배려이겠지요. 물론 저 사회 구조의 변화는 엄청난 일입니다. 아마 제가 죽기 전까지 저것의 큰 변화를 볼 수 없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러한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그 필요성의 공감이 넓어질수록 인간에게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희망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ㅋ


  그리고 EDIF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알게 된 것도 이 다큐멘터리에 의한 소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거 공식 홈페이지(http://www.eidf.org/)를 가 보니 흥미가 생겨나는 작품이 한두 개가 아니네요 ㅋㅋ 물론 다 볼 수는 없겠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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