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5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인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종방 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이 시점에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종방 직후의 엄청난 검색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_-;;; 제 생각을 인터넷에 공개하기는 하지만, 많은 분들이 보는 건 두렵다는 이중적인 마음 때문인 듯하네요 ㅋㅋ 요즘은 글을 길게 쓰는 것도 너무 힘드니, 지극히 간단하게 드라마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써 내려가 보아야겠습니다.


베토벤 바이러스


1. 줄거리

  석란시에서 시향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뒤, 그를 실무적으로 담당하던 두루미는 거액의 사기사건에 연루되어 공금을 모두 잃어버리게 됩니다. 연주자를 구할 수 없게 된 두루미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실력과 관계없이 우선적으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전문가가 아닌 회사원, 정직 중인 경찰, 캬바레 연주자, 가정주부, 고등학생, 교향악단 은퇴자, 일렉 바이올린 연주자 등의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모집하게 되죠. 그렇게 급조한 오케스트라에, 기존의 계약으로 인해 세계적인 지휘자이지만, 성격이 특이하고 매우 깐깐한 강건우 마에스트로(강마에)가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많은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아슬아슬한 위기와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겪으며, 그 급조된 시향은 결국 공연을 어찌어찌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시향을 위해 회사를 그만둔 박혁권 씨의 이야기, 가정주부와 첼로 연주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희연 씨의 이야기,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오보에 연주자인 김갑용 할아버지와 갈등을 겪는 하이든 양의 사건 등 본격적으로 주변인물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야기는 트럼펫 연주를 맡고 있는 강건우의 이야기입니다. 독단적이고 독설에 익숙한 강마에와 대립각을 이루는 동시에, 강마에의 실력과 카리스마를 부각하는 역할도 맡고 있어서 주연 인물들의 개성을 살려 주고 있거든요. 동시에 두루미와의 사랑도 점점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전개가 있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공식이겠죠 -_-ㅋ 갈등을 겪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점점 가까워지고 안정되는 인물들의 외적·내적 관계에 점점 커다란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외적으로는 조만간 있을 시장 선거에서 강춘배 현 시장의 정적인 최석균 의원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과거의 사기 사건을 이슈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그것이 봉합되는 과정에서 다시 단원들의 자격 문제가 불거져 주요 인물들이 전부 시향에서 해고되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죠. 내부적으로는 여러 주변 인물들의 사건도 있지만,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강마에가 제자로 맞아들인 강건우가 그의 개성으로 인해 점점 강마에와의 갈등이 커져 가는 것과, 강건우와 분위기가 좋던 두루미가 결국 강건우가 아닌 강마에를 선택하게 된 것이 그 갈등상황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이 복잡한 인물 간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정리가 되어가는 듯 진행되지만, 다른 외적인 요소들이 다시 이 갈등관계를 극대시킵니다. 첫 번째로 강건우에 대한 좋은 세간의 평가가 강마에에게 열등감과 비슷한 종류의 경쟁심리를 자극시켜, 기존까지 강건우 쪽에서 크게 보이던 갈등의 원인이 이제 강마에로 옮겨지는 양상이 나타나죠. 두 번째로는 새롭게 시장으로 당선된 최석균 씨와 강마에의 갈등으로 인해 시향 자체가 흔들리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시향에서 쫓겨난 연구단원들이 만든 '마우스 필'역시 현실의 한계라는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최고조로 올라간 갈등은, 결말에 다가가며 인물 간의 소통과 이해로 점차 가라앉는 양상을 보입니다. 비록 외적인 갈등 요소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등장인물 간의 갈등은 서로에게 갈등에 따른 성숙함을 선물로 남겨둔 채로 사라지는 모습이 나타나거든요. 그리고 비록 마냥 아름답지는 않지만, 부드럽고 깊은 인간관계를 뒤로 하고 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위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드라마의 전체적인 진행은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절정부가 작은 위기 - 완화 - 큰 위기로 나뉘기는 합니다만 이것 역시 전형적인 형식이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전개 구도에서 적절하게 삽입되어 주 줄거리를 흩어놓지 않으며 드라마로의 몰입도에 도움을 주고 있고, 주 줄거리와의 연계도 탄탄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줄거리만으로는 이 드라마의 인기 요소를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2. 등장인물의 개성

  이 드라마가 방영 초에 이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강마에의 역을 맡은 김명민 씨의 훌륭한 지휘 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드라마가 종영될 때까지 드라마의 중심에는 항상 이 강마에라는 캐릭터가 존재해 왔습니다. 물론 다른 조연인물들의 개성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이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가장 특이한 캐릭터인 강마에에 대해 우선적으로 한 번 생각을 해 볼까 합니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권위는 그 획득 방식에 따라 전통적, 카리스마적, 합리적(합법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인정되는 공식적인 권위는 대부분 합리적 권위의 형식을 띠고 있죠. 하지만 이와 같은 합리적 권위의 안에서도 아직 과거의 권위 획득 방식은 분명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카리스마가 상대적으로 크게 중시되는 것 중의 하나가 지휘자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강마에라는 캐릭터는 그 설정이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실력과 그에 걸맞은 자존심, 괴팍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특이한 언동은 그의 직책인 지휘자와 어울려 더욱 카리스마적 지도력의 화려한 광채를 빛내주는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그는 단순히 카리스마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끔 가다 보여주는 서툰 애정표현을 통해 인간다움 역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다움을 보여줄 경우 자칫 잘못하면 그 모습이 카리스마에 손상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강마에는 독설을 통해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청자에게 그의 특이한 개성과 카리스마를 손상시키지 않고 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죠. 게다가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상인 '인간다우면서도 완벽함을 갖추고 있는, 성군과 같은 지도자'의 모습과도 잘 부합합니다. '밖으로는 곧은 대나무 같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갈대'와 같은 그의 모습은 분명 엄청난 매력임이 분명하죠.

  반면 드라마의 전반에서 강마에와 대립각을 이루고 있는 강건우의 캐릭터는 이와 다른, 보헤미안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비록 작품 초반에 현실에 얽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일단 그를 벗어난 이후부터는 한없이 창공을 비상해 나가는 파랑새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거든요. 게다가 그는 이러한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천재'라는 최고의 칼이자 방패까지 지니고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멋진 외모도 함께요) 게다가 강마에와의 대결·타협 구도는 강마에에게도 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는 효과를 주었지만, 강건우라는 자유로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숨겨진 가능성의 표현을 극대화시키면서 그의 위상을 '불나방'에서 '파랑새'로 격상시키는데 엄청난 도움을 가져다줍니다. 이 역시 각종 일상에 얽매인 대다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겠죠.

  사실 제가 드라마에서 제일 끌렸던 캐릭터는 박혁권이었습니다.  비록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지만, 현실과 꿈 양쪽의 사이에서 헤매면서도 차근차근 나아가는 모습이 좋았거든요. 하지만 아쉽게 드라마 전체에 큰 영향을 주는 캐릭터는 아니었습니다. 외전 격으로 '박혁권의 인생 찾기'등이 나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저만 그렇겠죠……)


3. 거슬리는 점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이 드라마는 탄탄한 줄거리와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표현되는 방법도 우수했고요. 게다가 지나치게 이상적인 대단원을 위해 현실성을 많이 결여시킨 기존의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극복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도 이해·타협을 통해 성장하는 캐릭터 간의 모습을 보여주어 드라마의 개연성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서술되는 배경인 교향악단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소재로 참신함을 더해 주고 있었고요. 전반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점이 마음에 들 수는 없었겠죠 ㅠㅠ

  우선 제일 거슬리던 것은 절정 부분의 구성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형식인 '발단 - 전개 - 절정 - 결말'의 구도에서 가장 길어야 하는 부분은 전개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약간 비정상적으로 절정 부분이 길죠. 게다가 그 부분에 해당되는 이야기의 출렁임도 굉장히 큽니다. 위에서 줄거리를 설명할 때 '작은 위기 - 완화 - 큰 위기'라고 표현한 부분도 사실 작은 위기와 큰 위기 부분의 강도가 크게 다르지 않은, 위기의 연속으로 보아도 될 정도의 진행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 때 전개 부분이 제일 긴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위기상황의 연속은 도리어 청자의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강건우와 강마에의 갈등상황 역시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경쟁자가 존재하는 구도가 그렇지 않은 구도에 비해 더욱 많은 흥미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강건우와 강마에는 인생 경험, 실력, 사회적 배경 등 모든 면에 있어서 경쟁자의 구도가 설정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재성과 자유로움을 앞세운 강건우의 도전은 두루미의 배신(?)과 맞물려 생각할 때 어찌 보면 치기 어린 도전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후반부에 이에 대응하는 강마에의 처신은 작품에서 설정되고 보였던 그의 위치나 인성 면에서 보았을 때 약간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생 경험이 많은 어른이 저러한 대응 모습을 보이면 흔히 '나이를 XXX로 처먹었냐'라는 말이 나올만하잖아요 ㅋ) 차라리 그의 천재성에 시기심이 든 것이라면, 다른 지휘자인 그의 친구 정명훈과 그러한 갈등상황을 빚는 것이 조금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정명훈의 경우, 그가 타고난 천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쪽과 그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4. 정리

  위와 같은 전개 상의 몇몇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베토벤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탄탄한 줄거리 진행을 보여주며 각각 특화된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극대화시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닥본사를 외치며 -_- 열심히 보았으니까요. 특히 상당히 낯선 소재인 교향악단을 작품에 굉장히 잘 사용하였다는 점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교향악단에서 연애하는 드라마'의 패턴으로 흘러갔다면 실망이 컸을 겁니다 -_-a) 캐릭터에 큰 비중을 둔 작품 전개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흔한 드라마들이 주연급 인물의 캐릭터를 제외하면 정형화된 캐릭터의 모습을 조연에 부여하는 것에 비해 훨씬 재미있었어요. 마치 각각의 음색을 지닌 악기들이 한데 모여 교향악을 연주해 내듯이, 모든 캐릭터가 찬란하게 빛나며 만들어 낸 이 '베토벤 바이러스'는 아름다운 드라마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p.s. 사실 원래 썼던 글은 이 글에 비해 분량이 1.5배 정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12시 반이 좀 넘었을 즈음 글 작성을 완료하고 저장하기를 눌렀는데, 바로 나타나는 '티스토리 점검 중'이라는 문구…… 요즘 타의에 의해 바른생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제가 모처럼 밤늦게까지 열심히 글을 썼는데 그대로 본문이 안드로메다행을 떠나버렸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 다시 쓰려니 지치네요. 귀찮아서 문장 다듬기도 하지 않았으니 아마 글도 좀 거칠 듯하네요 ㅠㅠ 여하튼 이와 같은 이유로 대충 다루려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를 지어버렸습니다. 티스토리 관계자 여러분, 글 저장하기 버튼을 누를 때 본문 내용이 자동으로 클립보드에 저장되는 패치를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흑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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