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7

[애니메이션] 히다마리 스케치 (ひだまりスケッチ)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애니메이션에 대한 감상문을 써 왔지만, 이 작품만큼 처음 감상문을 쓸 때 열림말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애니메이션이 달리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줄로 요약하라면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 별 내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또 그렇게 요약을 해 놓으면 아쉬움이 생기는 즐거운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냥 감상문 자체를 쓰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러기에는 또 이 작품 덕분에 느꼈던 즐거움이 너무 아쉬워서 결국 이렇게 글을 쓰게 되어버렸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히다마리 스케치 외에도, 히다마리 스케치 ×365 (ひだまりスケッチ×365)라는 후속작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두 작품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둘을 하나로 묶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히다마리(日溜まり)라는 일본어 단어는 '양지'라는 말로 완벽하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사는 아파트의 이름으로 '히다마리'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그것이 제목과 제일 큰 연관성을 갖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유 명사를 표기하는 방식에 따라 제목을 '히다마리 스케치'라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굳이 이 설명을 붙인 이유는, '양지 스케치'로 표기하지 않고 일본어 발음 그대로를 가져와 쓴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분들이 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뭐, 요즘 국내에서 개봉되는 외화 대부분이 원제 발음 그대로를 단순히 한글로 옮겨 쓸 뿐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런 염려는 단순한 기우 같지만요.

앞으로의 이야기에는 애니메이션의 주요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감상하지 않은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ひだまりスケッチ


1. 줄거리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야마부키 고교 미술과에 다니는 1학년 학생인 유노가 학교 근처 히다마리장에서 자취하며 지내는 1년간 겪은 여러 이야기들이 주 내용이니까요.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유노와 같은 히다마리장에 사는 같은 반 친구 미야코, 미술과 선배들인 히로와 사에까지 포함한 4인이 겪는 각종 일화들이 서술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사실 이 작품처럼 자잘한 일화들이 묶여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작품의 경우 (게다가 이 작품처럼 딱히 '결말'이라고 부를만한 대단원 부분마저 없는 경우는 더욱더) 전체 줄거리를 정리하면 이렇게 지극히 단순한 구조가 나와 버립니다. 그래서 위에 쓴 대로 극단적으로 한 줄 요약마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이것으로 이 작품이 빈약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거나, 별 내용이 없다는 이야기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옴니버스 식의 구성이라고 말하기는 약간 어렵지만, 대체로 그와 비슷한 구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작품 전체가 '학교생활'과 '자취생활'로 요약 가능한 단순한 배경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일들은 분명 하나하나 구분이 가는 특별한 이야기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학창 시절을 '학교생활'이라는 한 마디로 간단하게 요약해 버릴 수 있지만, 그 요약된 한 단어 안에는 실제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하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2. 그림체

  이 작품의 그림체는 상당히 귀엽습니다. 다른 일화성 코미디 작품(아즈망가 대왕 등)과 같이, 중간중간 보는 사람을 웃기게 만드는 재미있는 그림도 등장하고, 기본 그림체 자체도 '귀여운 캐릭터' 설정을 충분히 보조할 정도로 매력적이니까요. 게다가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원작인 만화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로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거친 선과 정리되지 않는 윤곽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거든요. 배경 또는 사물들도 만화에서 사용되는 스크린 톤과 비슷한 느낌이 들게 만들어진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요. 애니메이터 분들께서 은근히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고생이 표 나는 모양새는 아니지만요 -_-;;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와는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바로 아래에 이야기할 상징 사용과 더불어, 이 작품에 가장 큰 개성을 부여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3. 상징의 사용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엄청날 정도로 많은 상징(象徵)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이 작품의 특징이 아니라, 이 작품을 만든 제작사인 SHAFT의 특징일 수도 있습니다. 샤프트에서 예전에 만들었던 ef - a tale of memories도 이와 비슷한 화면 구성이 연출된 바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거기에서는 주로 색과 단순화·강조화된 이미지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하게 표현하였었던 것에 반해, 이 히다마리 스케치에서는 그러한 강조 외에도 말 그대로 상징 자체를 엄청나게 이용한 점이 더욱 많이 두드러집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상징을 '인간·사물·집단 등의 복잡한 개념을 단순하게 나타내거나 표시하도록 만든 의사전달의 한 요소'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나, 온천·목욕탕을 나타내는 ♨표시와 같은 것이 상징의 한 예이죠. 이와 같은 상징물들은 그 상징물이 표시하는 원 사물의 복잡한 특성을 간결하게 표시하여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특정 공동체 내에서 어느 정도의 공감을 받아 상징을 지정·사용할 수 있다면, 정보 전달이 굉장히 편리해지죠.

  히다마리 스케치에서는 일반적인 상징과, 시청자들을 상대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상징'을 만들어 이를 작품 구성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유노는 머리 양쪽에 X자 모양의 머리핀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유노의 상징으로 이용됩니다. 화면에 X자만 나타나서 흔들리는 상태에서 유노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 '유노가 이야기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거나, 어떠한 사건으로 유노가 고민을 할 때 붉은색으로 깜빡이는 X자가 화면에 나오는 것과 같이요. 그리고 캐릭터가 가볍게 뛸 때, 그 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다다다다' 뛰는 소리에서 나온 '다'자가 막 움직이는 화면이 나타나는 것이나, 캐릭터가 긴장한 상황에서 '두근두근'이라는 글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등, 만화에서 자주 쓰이는 글자를 이용한 효과도 자주 나타나고요.

  제작사에서 시청자가 파악하기 어려운 고도의 상징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잦은 상징물의 등장이 애니메이션 감상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작품 자체의 줄거리가 일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효과가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물론 모든 애니메이션이 전부 이렇게 만들어진다면 '저것들 분명 그리기 귀찮아서 X자 치고 말았군'이라는 말을 할 테지만, 모든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이러한 작품에서 이러한 효과들을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여전히 '그리기 귀찮아서 저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살짝살짝 들기도 하고, 이 애니메이션 자체가 저예산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_-a


4. 뒤섞인 이야기들

  이 작품은 마무리 부분에서 그 일화가 일어난 날의 날짜가 나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매 화의 순서와 작품 내의 날짜 순서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예를 들어, 히다마리 스케치 2화는 8월 21일의 일화인데 3화는 6월 17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후속작인 히다마리 스케치 X365 12화는 또 7월 7일의 이야기이고요. 날짜와 애니메이션 진행 순서가 일치하지 않고, 작품 전체를 통틀어 제멋대로 일화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보통의 애니메이션이라면 용납되기 힘든 구성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면 줄거리를 알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히다마리 스케치에서 이와 같은 구성이 가능했던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이 각각의 일화를 묶은, 옴니버스 형식과 비슷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화가 다른 화와 그리 큰 연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독자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독립된 이야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구성이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히다마리 스케치와 같은 구성방식을 가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생각해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역시 각각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큰 줄거리에 엮여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구성이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애니메이션이거든요.

  게다가 등장인물들 역시 간단한 행동과 생김새를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바로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형태로 주어지기 때문에, 캐릭터 파악에도 큰 장애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사실 순서가 이렇게 섞여 있는 것처럼 보여도,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 진행을 살펴보면, 날짜와는 상관없이 애니메이션이 진행될수록 캐릭터의 내면이 점점 깊게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겉모습에서만 날짜가 뒤죽박죽 섞여있을 뿐이지, 캐릭터의 이해 측면에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방식으로 작품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마 어떤 사람에게 히다마리 스케치를 일이 일어난 순서대로 재배열하여 처음 보여주게 되면, 애니메이션 내의 캐릭터 파악이 힘들어서 도리어 어색함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5. 마무리

  위에서 작품의 외적인 특징에 대해 많은 공간을 할애해 설명을 하였지만, 역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아기자기한 등장인물들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가장 큰 매력이 이 작품의 가장 큰 개성은 아니지만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손목시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다이아몬드이지만, 결국 전체 틀에서 그 물건을 대표하는 것은 '손목시계'라는 말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보고 있으면 잔잔한 재미를 주는 히다마리장의 에피소드들이, 위에서 언급한 외적 특이함에 의해 빛을 발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무엇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주는 잔잔한 즐거움이 너무 좋았습니다. 학교와 아파트에서 겪는 일들만으로 각 13화, 총 26화나 되는 분량의 작품이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졌다는 것도 상당히 신기했고요 -_-a 가벼운 코미디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자신 있게 히다마리 스케치를 추천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인 만화 쪽은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이고, 더욱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추가되었다고 하니 속편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으니(……) 제작에 큰 부담도 없을 테고, 꼭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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