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2

국가 R&D 예산 삭감과 학생연구원 인건비 간의 관계


  2024년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25조 9,152억원으로, 전년(2023년) 31조 778억원 대비 △16.6% 감소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가 R&D 예산 규모가 전년과 대비하여 축소되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31년 전인 1991년(1990년 8,241억원, 1991년 9,213억원으로 △10.6% 감소) 이후 처음 발생한 일이니까요. 물론 이 안은 정부 예산(안)으로, 2024년도 최종 예산(안)은 국회에서 심의 및 확정하게 되므로 향후 변경될 소지는 있습니다.

  연구개발비가 감액되면, 당연한 말이지만 연구개발 활동 역시 축소됩니다. 새롭게 지원하는 연구개발사업은 당연히 줄어들 것이고, 기존 진행되고 있던 연구개발사업 역시 예산 삭감 또는 중단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장 내에서의 기업 경쟁력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높고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은 현재 대부분 민간 분야(기업 등)에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수행 중이며, 이 분야는 정부 R&D 예산이 감액되더라도 큰 영향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간 분야에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수행하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영향을 받는 분야는 정부 및 공공분야에서 수행하는 R&D일 가능성이 크며, 연구개발 유형으로 보았을 땐 원천·기초연구 및 응용연구 분야의 타격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최근 R&D 예산 감액과 관련하여 크게 이슈가 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학생연구자의 학생인건비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예산이 16.6% 감소되었으면 학생연구비 역시 똑같이 감액될 것이고, 학생에게 인건비를 그만큼 지급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학생연구자는 정규직 연구원 또는 비정규직 위촉연구원(전문연구원)에 비해 사회적 약자이므로 연구책임자가 학생연구비를 더욱 줄여 재료비 등의 다른 연구비를 보전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연구개발사업의 예산 구조상 학생연구비가 정부 예산삭감 비율 이상의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R&D 사업 예산은 주로 과학기술분야의 R&D 예산이므로, 인문사회계열의 R&D 또는 정책, 기획과 같은 특수한 형태의 연구개발사업은 아래의 논의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또한 정부 R&D 예산 증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중심으로 서술하겠습니다.


1. R&D 사업의 예산구조는 어떠한가

  먼저 R&D 예산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예산은 크게 직접비와 간접비로 나누어지며, 직접비는 연구에 직접 투입되는 비용으로 인건비, 학생인건비, 연구시설·장비비, 연구재료비, 연구활동비, 연구수당, 보안수당, 위탁연구개발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간접비는 연구개발기관이 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 중 개별 사업에서 직접 산출할 수 없는 비용으로 인력지원비, 연구지원비, 성과활용지원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의 연구개발사업은 기관에 속한(간접비) 연구자들(직접비 내 인건비, 학생인건비)이 연구개발활동(인건비, 학생인건비 외 나머지 직접비)을 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왜 인건비/학생연구비가 더욱 크게 줄어드는가

  R&D 사업의 예산이 감액될 경우 과제의 직접비와 간접비 모두 같은 비율로 감소합니다. 여기에서 간접비는 해당 기관의 간접비율에 따라 연구비에 연동하여 책정되고, 별도로 지출되기 때문에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항목은 연구자들에 대한 인건비와 연구개발활동을 하기 위한 인건비 외 직접비가 됩니다. 문제는 모든 연구개발사업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외에서 기술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고 개발일정이 지연될 경우 연구 및 기술개발의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는 연구책임자는 사업비가 줄어들더라도 목표치(성과)를 낮추기보다 기존의 개발목표를 최대한 유지하는 쪽으로 프로젝트의 내용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 연구책임자는 연구개발활동을 하기 위한 재료 및 시설·장비 구입, 학회 및 전문가활용을 위한 비용 등을 크게 줄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장비 없이는 개발을 할 수 없고, 기존 계획했던 장비보다 저렴한 장비를 구매할 경우 측정값이 정밀하지 못하거나 측정값이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재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료 없이는 실험을 할 수 없고, 재료를 적게 구매한다는 것은 실험을 적게 하겠다는 말과 같은데 이 역시 사업 진행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결국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 중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쪽은 인건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확보가 어려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보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연구자인 학생연구자, 박사후연구원, 위촉연구원(전문연구원)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먼저 고민의 대상이 될 수 있고요. 

  복잡하게 이야기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기업의 경영 악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출이 줄어들 경우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구조조정이고, 구조조정 시 필수 인력보다 대체가 가능한 인력을 먼저 내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정규직 연구자의 인건비는 왜 안 줄이는가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정규직 연구자의 인건비를 줄여 고통을 분담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당연히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정규직 연구자들은 인건비를 줄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먼저 공무원(국공립연구소) 및 교원(교수 등)은 연구개발사업에서 인건비를 현금으로 받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한 영리기관(기업 등) 역시 일부 예외사유를 제외하고 연구개발사업에서 인건비를 현금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인건비를 현물로 계상하기 때문에 특정 과제의 연구개발사업비가 줄어든다고 해도 인건비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애초에 사업에 인건비를 계상하지조차 않았으니까요.

  다만 공무원 및 교원을 제외한 비영리기관의 연구자는 과제에서 인건비를 현금으로 계상하고 있으므로, 인건비의 감축이 가능합니다. 다만 문제는 해당 인력이 인건비를 현금으로 계상할 수 있는 이유가, 해당 인력들이 원칙적으로 자신의 인건비를 자신이 확보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연구자 1인이 수행할 수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최대 5개가 한계이기 때문에 제한된 사업 내에서 자신의 인건비를 확보해야 하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이들이 만약 스스로의 인건비를 벌어오지 못할 경우, 소속 기관마다 처분이 다르기는 하지만 급여 또는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규직 연구자의 인건비를 줄이는 선택을 하기가 쉬운 편은 아닙니다.

  결국 정규직 연구자가 마지막으로 고통 분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연구수당을 포기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연구수당은 과제에 현금 또는 현물로 계상된 인건비와 학생인건비 합의 20% 수준까지 계상할 수 있습니다. 과제 연구비 전체로 보았을 때 한 자릿수 % 정도의 비중밖에 되지는 않지만, 그나마 연구에 차질을 주지 않고 감액할 수 있는 유일한 비용이니까요. 물론 연구자 개인들에게 본인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가인 연구수당을 포기하라는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문제와, 과학기술자의 처우 악화 문제가 함께 불거질 것이 뻔하기는 하지만요. 지금도 그렇지만, 결국 의대 갔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다시 나오겠죠…….


4. 왜 학생연구자가 제일 불리한가

  위에서 다 말하지는 못했지만, 정규직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실 더욱 강력한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고용계약과 취업규칙입니다. 대부분의 연구개발기관은 일정 크기(10인 이상의 근로자 활용)의 규모를 가지고 있으므로, 의무적으로 취업규칙을 작성하여 고용노동부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취업규칙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조 또는 과반수 이상 근로자의 동의를 받거나,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는 객관적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전제하에 사용자가 근로자를 설득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이던 험준한 길이고, 위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과학기술자의 처우 이슈가 추가로 불거질 수 있으므로 쉽게 선택하기에는 부담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박사후연구원이나 위촉연구원(전문연구원)은 근로계약이라는 보호장치가 있습니다. 근로계약서에는 고용기간과 해당 기간 중 지급하여야 하는 인건비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근로계약을 수정하자는 요구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역시 근로자의 동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개별 근로계약은 취업규칙에 선행하기 때문에 일괄 변경도 불가능하고요. 현실적인 압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여하튼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연구자는 위의 보호장치가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학생연구자가 연수를 받는 일부 기관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연구자는 소속 대학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기관과의 근로계약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계약기간이 학기 또는 학년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리 긴 편이 아닙니다. 게다가 학생연구자는 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하는 참여연구원 인력 중에서 제일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력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학위과정을 진행하며 전문지식을 한참 배우고 있는 인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업무의 대체가 용이한 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학계의 특성상 지도교수가 인건비를 주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도 학생은 학위과정을 마치기 전까지는 직접적인 저항이 어렵습니다. 설사 학위과정을 마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지도교수와 계속 학계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에 저항이 어렵고요. 그렇다고 학위과정을 포기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걸고 이미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학생연구자는 연구개발사업 예산 삭감에 제일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5. 해결책은 없는가

  먼저 결론만 말하자면, 학생인건비를 위한 별도의 예산 지원 없이는 위의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원칙적으로 연구개발사업은 연구개발활동을 통한 성과 창출이 목적이지, 학생연구자의 급여를 주는 것이 목적인 사업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학생연구자의 인건비를 주기 위해 연구개발 목표를 포기하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위이며, 지금과 같은 대규모의 예산 삭감 상황에서 학생인건비만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하라는 요구는 연구책임자들에게 본인의 경력과 목표를 포기하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차라리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수정하여 학생연구자의 인건비를 지급하기 위한 별개의 사업을 만들고,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편이 더 현실성 있는 방법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효율적인 방법을 쓸 리는 없을 테니, 현재로서는 딱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밖에 볼 수 없겠네요. 합리적으로만 보자면요.

  하지만 현재 정부에서는 학생연구원 지원을 줄이지 않겠다는 발표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과기부 장관도 국정감사장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요. 정부의 논리는 R&D의 비효율적, 관행적 예산을 삭감한 것이고 학생연구원에 대한 인건비 지원은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결국 예산은 삭감했고, 학생인건비 재원은 대학과 연구기관이 알아서 만들라는 방식으로 해결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긴, 이 방법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효과가 검증된 전통적인 해결책이기는 합니다. R&D 축소에 따른 피해는 단기적으로 나타나지도 않고, 구체적으로 산정하기도 어려우니까 부담도 적을 거고요. 기왕 개혁하는 김에 과기부도 굳이 따로 두지 말고, 1998년 이전 체제인 과학기술처로 다시 개편하는 것도 좋은 방법으로 보입니다. 규모가 커서 부담된다면 2008년처럼 과기부 업무를 쪼개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로 개편하는 방법도 있고요. 중요하지도 않은 분야인데 효율화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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