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5

인간 진화에 대한 이야기 (1)


먼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창조론을 믿는 분들은 약간 SF와 비슷하기도 한 이 이야기에 공감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려 드립니다. 단, 창조론 중에서 대진화는 인정하지 않지만 소진화는 인정하는 학설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1. 인류의 진화

  모든 생명체는 진화합니다. 물론 그 '진화'의 정도에 대해서는 또 이견이 있을 수 있지요. 유인원이 인간이 된 것과 같이 종 자체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든, 갈라파고스 제도의 방울새가 먹이에 따라 부리 형태가 바뀐 것과 같은 소진화가 일어나든지 말이죠. 이 양자의 차이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오늘의 이야기에서는 이것이 주가 아니니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수준에서 이 이야기는 마무리 짓도록 하죠.

  이렇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사실에서, 인간 역시 진화를 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화석에서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래로 원시 인류의 뇌 용적은 증가해 왔죠. 주식에 따라 인류 자체가 어금니가 발달한 종과 송곳니가 발달한 종으로 나뉜 적도 있었고요. (그중 잡식을 즐기던 송곳니가 발달한 원시인류가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되었죠) 이와 같이 인간도 다른 생물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맞게 그 형태를 변화하여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미래의 인류도 그들의 환경에 맞게 진화를 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흔히 미래의 인간으로 그리는 모습을 보면, 머리는 엄청나게 크고 눈은 나쁘며 손이 엄청나게 발달한 모습을 많이들 상상하곤 합니다. 지금의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냈지만, 동시에 그 스스로가 속하는 환경인 '문명'에 맞게 인류의 특징이 변화될 것이라는 이야기이죠. 인간은 머리를 많이 쓰니 머리가 발달할 테고, 눈은 지속적으로 혹사를 당할 테니 나빠질 것이며, 온몸의 근육 중 손의 근육을 많이 쓰니 손이 발달하게 될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2. 불가능한 인류 진화 (1)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진화의 성질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인류가 이러한 진화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말하기 위해 제일 먼저 언급해야 될 성질은,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수의 예외도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크기의 다세포 생명체에서는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따라서 평생 컴퓨터를 두드리던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기를 낳아도, 그 아기가 다른 사람에 비해 손 근육이 발달된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특정 신체 부위의 능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특출 나게 뛰어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가 그 뛰어난 특정 신체 부위의 능력을 물려받아 같은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경우는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지능이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그 예가 되겠네요) 하지만 이것이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기존의 유전자가 발현된 것일 뿐이죠.

  그럼 '한 생명체가 환경의 영향으로 얻게 된 특징이 유전되지 않는데, 어떻게 환경의 영향을 받아 진화가 가능하지?'라는 물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확률에 의한 '적자생존'과 돌연변이입니다. 이 중 돌연변이는 일단 이 이야기에서는 제외하겠습니다. 환경에 적응하여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일어난 변화 중 환경에 맞는 변화가 선택된다는 이론이니 본 주제와 맞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외형적 동질성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인간 사회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경우, 그 형질의 유불리를 시험하기도 전에 제거될 확률이 높기도 하고요.

  적자생존은 환경에 알맞게 적응하는 쪽이 살아남는다는 말입니다. 크게는 종의 멸종과 번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쓰이지만, 좁게는 동일 종 내에서 특정 형질이 선택받을 때 쓰이기도 합니다. 무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매우 진부하고 상투적인 예이지만, 원래 짧았던 기린의 목이 나중에는 길어진 이유를 설명할 때 흔히 이것이 동원되고는 합니다. 처음에는 짧은 기린이 생존을 위해 먹이를 확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었지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가 기린의 먹이인 나뭇잎이 달리는 나무의 키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변화는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에 기린들은 그를 느끼지도 못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목이 짧은 기린들은 점점 나뭇잎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갑자기 일어난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로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 약간의 확률적 차이가 목이 1mm라도 긴 기린 쪽에 조금 더 많은 먹이를 확보하도록 도와주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영양소를 상대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목이 짧은 기린들은 목이 긴 기린에 비해 번식을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이 길 수록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를 확보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긴 세월 동안 그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적자생존에는 중요한 개념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적자생존이라는 명제의 대우 형태인 '생존하지 못하면 환경에 알맞게 적응한 쪽이 아니다'라는 말이죠.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의미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고 멸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위의 기린 목 사례에서도 환경에 맞지 않는 목 짧은 기린이 점점 생존 가능성을 잃어갔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유전자 교환이 가능한 하나의 종 안에서 더욱 심하게 두드러집니다. 즉, 목 긴 기린의 출현은 목 짧은 기린이 도태되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절멸하는 가운데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죠.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인류가 진화를 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경우라도 그 생존이 크게 위협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기아에 시달리고 아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해당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이지 개개인의 유전자적 특징 때문은 분명 아닙니다. (물론 여기서 또 굶고 있는 민족 전체의 유전자가 현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의견은 반세기도 전에 폐기되어 버린 우생학과 다를 게 없는 말이죠. 넵, 오류입니다) 게다가 인류는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동질감을 지니고 있으면,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넉넉히 확보한 한 개체가 그렇지 못한 개체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 잦습니다. 따라서 환경에 부적절한 유전자가 퇴출되기 힘들고,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되기 힘들게 되죠.

  이쯤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고 생길 수 있는 오해를 풀도록 해야겠습니다. 아마 '그래서 인류의 진화를 위해 적자생존의 원칙을 도입해서 환경 부적응자를 다 죽이자는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서 말이죠. 아쉽게도 저는 인종개량주의자나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리고 적자생존이 생물계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더라도 그것이 꼭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요. 그리고 적자생존은 우월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어울리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입니다. 갑자기 대륙 전체가 바닷속에 잠겨 인류가 멸종하고 멸치가 번성할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이것이 새로운 환경에 멸치가 인류보다 더 잘 적응했다는 증거는 될 수 있겠지만, 멸치가 인류보다 뛰어나다는 증거는 될 수 없는 경우와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물론 뛰어나다는 말도 사실은 어폐가 있습니다. 물속 생존은 멸치가, 육지 생존은 인류가 뛰어난 것과 같이 기준에 따라 그것이 바뀌니까요) 따라서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는 도리어 유전자 풀의 범위가 넓은 쪽이 좋겠지요.


3. 불가능한 인류 진화 (2)

  물론 이와 같은 관점에서도 결국 어떠한 방향으로든 진화가 일어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원을 확보한 인류의 후손이 그렇지 못한 인류의 후손보다 숫자가 많아지고 번식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인류가 상호의 생존을 최소한도로라도 보장해 주고, 인류 사회에서는 획득형식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결국 느린 속도로 진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가정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인류 내에서도 도태와 자연선택이 일어나게 된다고 볼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이와 같은 관점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 '도구 사용'에 의해 불가능한 사실이 되어 버립니다. 인간은 그 스스로의 생물학적 불리함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인간은 먼 옛날에도 다른 동물에 비해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호신과 식량 확보를 위해 창, 활 등의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었잖아요.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눈이 나쁜 사람은 안경을, 귀가 나쁜 사람은 보청기를 착용하는 등의 '종족 내에서의 열성 극복'을 위한 도구 사용이 잦습니다. 또한 빠른 이동을 위한 자동차,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 부족한 힘을 대신하기 위한 내연 기관 등 보조 수단으로의 도구도 엄청나게 이용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망각과 시공간의 제약을 피해 글을 이용하여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보조 수단으로써의 도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도구 중, 종족 내에서의 열성 극복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는 인간의 진화 가능성을 봉쇄하게 됩니다. 눈이나 귀가 나쁜 사람들은 다가오는 위협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생존 가능성이 낮아야 하지만, 보조적 도구의 사용으로 그것이 극복되거든요. 관절이 나쁜 사람들은 위협을 피하고 자원을 확보하는 일이 그만큼 어려워야 하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낮아져야 하지만, 물리적 치료 및 인공 관절은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고요. 앞서 말한 기린의 예와 비교하면, 기린의 경우 높은 곳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개체의 크기를 키울 수밖에 없었지만, 인간의 경우 도구를 발달시킴으로써 개체의 크기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현재의 환경에서 생존이 불리한 유전자라도 그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다는 이 사실을 인류 전체로 확대시켜 보면, 인간 종 자체가 진화를 할 가능성이 극히 낮아짐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진화를 하지 않는다기보다 도구를 이용하여 지금 가지고 있는 인류의 생물학적 특성에 맞게 환경을 바꾸어나가기 때문에, 현재 인간의 유전자에 최적화된 환경이 구성된다는 말이 될 수 있겠네요. 즉, 인간은 자신의 유전적 특성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환경을 변화시킬 힘이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이 굳이 변화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적자생존에 따른 자연선택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환경의 변화'가 도구 덕분에 인간에게는 큰 작용을 하지 못하고, 인간이 맞닥뜨리는 환경의 변화가 없기에 인간 역시 진화의 필요성이 없어지게 되는 상황, 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원래 이런 글을 한 번에 결론까지 이어 쓰는 게 취향이기는 합니다만, 요즘 오랜만에 노느라 바빠서 -_-;;; 힘드네요. 그리고 너무 길어지면 읽기도 힘들잖아요 ㅋ 저야 이 주제가 관심사 중 하나이니 재미있게 생각하며 써 내려갔지만, 이 글을 읽으실 다른 분들을 위해 이쯤에서 글을 잘라야겠습니다. 남은 부분은 다음에 서술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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