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3

대장 내시경 후기


  내시경은 몸 안에 직접 넣는 카메라를 의미합니다. 매 번 내시경으로 위 검진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게 아주 고역입니다. 검진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검진받는 도중, 끝난 뒤까지 나름의 고통이 있습니다. 수면 내시경을 받아보기도 했고 삽관 부위 일부(목구멍)만 마취하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받아보기도 했었는데, 모두 별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장 내시경을 받아야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음식물이 들어가는 용도로 만들어진 위에 들어가는 내시경도 고통스러웠는데, 무언가가 나오는 용도로 사용하는 대장에 내시경을 들여보내야 하다니…… 망설임 없이 바로 수면 내시경을 선택하였습니다. 일단 고통의 순간(?)은 그렇게 피하기로 하였지만,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검사 3일 전부터 제한되는 식이 조절이 그것이었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소화기에 형태나 색이 남을 것 같은 음식은 다 먹지 말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백미밥, 죽, 식빵, 계란 및 두부만 먹으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유부도 두부니까 먹어도 되겠지라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재검사라는 결론이 나오면 결국 나만 손해이므로 딱히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며 식이 조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시간, 검사 전 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장정결제 상자 전면
  장정결제, 세장제 등의 멋진 이름이 붙어있지만 이 녀석의 정체는 설사약입니다.

장정결제 상자 안쪽 설명
  포장지 내부에 친절하게 조제법과 복용법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플라스틱 용기
  같이 주는 500ml 용량의 플라스틱 용기입니다. 물통으로 계속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내시경을 받고 돌아오자마자 바로 눈에 띄지 않도록 버려버렸습니다.

플라스틱 용기 상단
  약의 양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다량의 물에 녹여 함께 복용하여야 해서 이 용기가 필요합니다.

장정결제 내부 포장
  A제 2포와 B제 2포가 하나의 세트이며, 이들을 모두 물에 녹여야 합니다. 여기에 병원에서 보다 원활한 검사를 위해 기포제거제까지 추가하여 주었습니다.

장정결제 구성
  한숨이 푹푹 나오지만, 어쩌겠습니까. 먹어야지요…….

식수 준비
  저 모든 약을 통 안에 넣고, 물 500ml를 부은 뒤 잘 섞어줍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칵테일 블렌딩을 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약을 조제하였습니다.  맛은 음……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김 빠진 이온음료와 비슷했거든요. 이 약을 한 번에 다 마시는 건 아니고, 15분에 반 병씩 30분 내로 나누어 모두 복용하여야 합니다. 한 번에 다 마시기 힘들면 10분에 걸쳐 세 번으로 나누어 마셔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맛도 괜찮았고, 양도 크게 부담되는 편이 아니라 가볍게 마셨습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시로 준 사진에서 대변이 맑은 노란색이 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가 했습니다. 말 그대로의 의미더라고요. 쉴 새 없이 쏟아집니다. 왜 주의사항 중 약 복용 중에도 수분을 보충하라는 말이 있나 했었는데, 물을 안 마시면 큰일 나겠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듭니다. 잠은 당연히 잘 수 없습니다. 뱃속에서 계속 항문을 열라고 두드리니까요.
  그리고…… 이 약 복용 중에는 방귀가 나오지 않습니다. 방귀 같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화장실에 가야 합니다. 괄약근을 열기만 하면 바로 항문에서 오줌을 싸거든요. 결국 화장실 입구 근처에서 선잠을 자며 새벽녘을 지새웠습니다.

약 용해 완료
  두 번째로 약을 조제하면서 계속 한숨이 나왔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이 고생을 수포로 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미 오줌보다 더 맑은 노란 설사를 하고 있어서 왜 먹어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요. 병원에서 오전 6시 이후에는 물도 마시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새벽 4시 즈음 두 번째로 약을 복용하였습니다.
  4시 반이 조금 안 되어 복용을 완료한 후, 이번에는 바로 신호가 왔습니다. 강진 후 발생하는 여진과 같이 묵직한 충격이 다시 뱃속을 강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을 마시면 그 물이 아무 곳도 거치지 않고 바로 대장으로 연결되어 그대로 쏟아지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당연히 잠은 못 잤습니다.
  두 번째로 약을 복용하고 약 두 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니 뱃속의 아우성이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차마 병원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버려야 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걱정이 아니라 확신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앓고 있는 수많은 병 중 최소 변비는 이제 완전정복이 되었다고 보아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내시경 검사 결과가 잘 나와서 이 약을 또 복용할 필요는 없게 되었지만, 매우 강렬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장 내시경 검사 전 날은 실질적으로 잠을 자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니, 전날 푹 쉬어 체력을 보충한 이후 장정결제를 영접하시기를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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